투데이경제

거대한 덩치에 반전 매력, 디펜더 110 시승기

 랜드로버 디펜더 110을 처음 마주하면 5m가 넘는 거대한 차체와 네모반듯한 실루엣이 주는 압도적인 위압감에 선뜻 다가가기 어렵다. 높은 전고와 직선 위주의 디자인은 도심 운전이 서툰 이들에게 부담으로 다가올 법하지만, 막상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면 이러한 걱정은 기분 좋은 반전으로 바뀐다. 일반적인 SUV보다 훨씬 높은 시트 포지션 덕분에 도로 상황이 한눈에 들어오는 탁 트인 시야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거대한 덩치가 주는 심리적 압박감은 어느새 주변 차량의 움직임을 여유롭게 살필 수 있는 안정감으로 변하며, 대형 세단보다 오히려 다루기 쉽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디펜더는 수십 년간 오프로드의 상징으로 군림해온 브랜드의 정체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모델이다. 국내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110 모델은 90의 민첩함과 130의 공간 활용성 사이에서 최적의 균형을 이룬다. 이번 부분 변경을 통해 전·후면 범퍼와 LED 헤드램프 디자인을 다듬어 더욱 견고하고 단단한 이미지를 완성했다. 군용차를 연상시키는 투박한 비율을 유지하면서도 세련된 디테일을 가미해 도심 빌딩 숲과 거친 산길 어디에 세워두어도 이질감이 없다. 화려한 장식보다는 기능적 아름다움을 우선시하는 디자인 철학이 차체 곳곳에 녹아 있다.

 


실내 공간은 외관의 거친 느낌과 달리 첨단 디지털 기술과 고급스러운 소재로 가득 차 있다. 13.1인치로 커진 터치 디스플레이는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갖춰 내비게이션 조작이나 차량 설정이 한결 수월해졌다. 특히 오프로드 주행 시 필요한 각종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어 디지털 사용성이 대폭 개선됐다. 투박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손에 닿는 소재의 질감이 우수하며, 자주 사용하는 기능들을 물리 버튼과 터치 방식으로 적절히 배분해 운전 중에도 혼란 없이 조작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점이 돋보인다.

 

주행 성능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오프로더답지 않은 안락한 승차감이다. 전통적인 험로 주행용 차량은 서스펜션이 딱딱해 일상 주행이 불편하다는 편견이 있지만, 디펜더는 이를 보기 좋게 깨뜨린다. 4코너 전자식 에어 서스펜션은 노면의 잔진동을 부드럽게 흡수하며 고속 주행에서도 차체를 안정적으로 붙든다. 험지에서는 지상고를 최대 145mm까지 높여 장애물을 넘고, 승하차 시에는 차체를 자동으로 낮춰주는 편의성까지 갖췄다. 오프로드를 위해 개발된 첨단 기술들이 역설적으로 도심 속 일상을 더욱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셈이다.

 


공간 활용성은 디펜더 110이 올라운더로 불리는 결정적인 이유다. 트렁크 기본 용량은 972리터에 달하며, 2열 시트를 접으면 최대 2,277리터까지 확장되어 거대한 적재 공간이 확보된다. 캠핑 장비나 골프백은 물론 차박을 즐기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수준이다. 2열 좌석은 성인 남성이 앉아도 레그룸과 헤드룸이 넉넉해 장거리 가족 여행 시에도 피로감이 적다. 최대 3,500kg의 견인 능력과 900mm 깊이의 물길을 건널 수 있는 도강 성능은 이 차가 단순히 덩치만 큰 SUV가 아님을 증명한다.

 

시승을 마친 뒤 다시 바라본 디펜더 110은 위압적인 존재감 뒤에 숨겨진 다정함을 지닌 차였다. 처음에는 거대한 크기 때문에 선뜻 운전대를 잡기 망설여졌지만, 실제 주행에서는 누구나 편하게 다룰 수 있는 여유와 든든함을 선사했다. 출퇴근길 도심 주행부터 주말의 거친 레저 활동까지 완벽하게 소화하는 이 모델은 진정한 의미의 전천후 SUV라 할 만하다. 1억 원대 초반부터 시작하는 가격은 결코 가볍지 않지만, 일상과 모험을 동시에 품을 수 있는 가치를 고려한다면 프리미엄 SUV 시장에서 대체 불가능한 선택지로 남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