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제주 구좌 당근밭 침수, 보험 사각지대 논란

 제주 지역의 대표적인 당근 주산지인 구좌읍 일대가 극한의 기상 이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오랜 가뭄 끝에 찾아온 나흘간의 기록적인 폭우는 애타게 비를 기다리던 농민들의 기대를 순식간에 절망으로 바꾸어 놓았다. 지난 15일부터 18일까지 쏟아진 268.5mm의 물폭탄은 물 빠짐이 좋기로 유명한 구좌의 당근밭마저 거대한 호수로 만들었으며, 저지대 농경지들은 속수무책으로 침수 피해를 입었다.

 

농민들은 하늘의 변덕에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가뭄 탓에 트럭으로 물을 실어 나르며 어렵게 씨를 뿌렸지만, 예보와 빗나간 날씨 탓에 파종 시기를 번번이 놓쳤기 때문이다. 침수된 밭은 물이 빠지고 땅이 마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어 세 번째 파종을 준비해야 하는 처지다. 하지만 파종 시기가 지나치게 늦어질 경우 당근 대신 다른 작물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 농가의 시름은 깊어만 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농작물 재해보험'의 문턱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보험료의 상당 부분을 지원하는 정책보험임에도 불구하고, 올해부터 적용된 엄격한 가입 기준이 발목을 잡았다. 밭작물의 경우 싹이 땅 위로 올라온 비율인 '출현율'이 80%를 넘어야만 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규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가뭄으로 발아가 늦어진 농가들은 보험에 들고 싶어도 들 수 없는 무방비 상태에서 폭우를 맞이했다.

 

실제로 구좌읍의 당근 재해보험 가입 현황은 작년과 비교해 처참한 수준이다. 지난해 5,500여 곳에 달했던 가입 농지는 올해 480여 곳으로 급감했다. 보험에 가입했다면 경작 불능 시 종자값과 비료값이라도 보전받을 수 있지만, 대다수 농가는 아무런 보상 없이 수백만 원의 생산비를 고스란히 날릴 위기에 처했다. 농민들은 파종 단계부터 생산비가 투입되는 만큼 보험 가입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농민단체는 기후 위기가 일상이 된 시대에 맞춰 재해보험의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거에는 파종 전에도 가입이 가능했던 당근 보험이 올해부터 모든 밭작물에 동일한 잣대를 적용하면서 현장의 특수성을 외면했다는 지적이다. 극단적인 날씨 변화로 인해 농업 경영의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농민들이 안심하고 농사에 전념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은 제도의 악용을 막기 위해 출현율 기준 적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파종도 하지 않은 채 가뭄 피해를 주장하는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다만 보험 가입 전 피해를 입은 농가에 대해서는 기존의 재해 복구 지원 제도를 활용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하지만 기후 재난의 규모가 커지는 상황에서 사후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해 당분간 정책 개선을 둘러싼 갈등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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